차두리의 WC 405분, 행복하게 끝..
2014-05-17 출처: 조이뉴스24차두리의 월드컵은 끝났다.
시작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한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환희를 선사했던 월드컵. 차두리도 그 주역이었다. 차두리는 대표팀의 막내급으로 합류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파워 넘치는 경기력과 함께 차두리가 전하는 ‘해피 바이러스‘는 국민들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만들었다.
당시 공격수로 뛰던 차두리는 조별예선 1차전 폴란드전에 출전하며 월드컵 본선 무대 첫 경험을 했다. 후반 44분 차두리는 설기현을 대신해 교체로 그라운드에 나섰다. 짧았던 1분여 시간이었지만 차두리는 그렇게 월드컵을 시작했다.
그리고 16강 이탈리아전에서 후반 38분 홍명보를 대신해 들어간 차두리.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던 오버헤드킥을 잊을 수 없다. 차두리는 안정환이 골든골을 넣은 연장 12분까지 19분간 출전했다.
4강 독일전에서는 선발로 나서 풀타임 90분을 소화했다. 터키와의 3~4위전에서는 후반 20분에 교체출전해 25분을 뛰었다. 이렇게 차두리의 첫 번째 월드컵은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한국은 역대 최고 성적인 4강이라는 신화를 이룩했다. 차두리도 그 중심에서 환하게 웃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차두리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차두리는 독일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당시 차두리는 독일 리그에서 뛰고 있었다. 그렇기에 차두리는 더욱 아팠고, 아쉬웠다. 하지만 차두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차두리는 다시 전진했고 자연스럽게 차두리에게 다음 월드컵이 찾아왔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차두리의 두 번째 월드컵이다. 2002년과는 달랐다. 2002년에는 공격수였지만 2010년에는 수비수였다. 그리고 2002년에는 막내급이었지만 2010년에는 주축 선수였다. 두 번째 월드컵은 차두리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었던 대회였다. 당시 ‘차두리 로봇설‘도 나올 만큼 차두리는 강인한 모습으로 그라운드를 누빈 월드컵 대표팀의 ‘아이콘‘이었다.
차두리는 조별예선 1차전 그리스전, 3차전 나이지리아전 모두 선발로 나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한국 대표팀은 사상 첫 원정 16강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 중심에 역시나 차두리가 있었다.
16강 우루과이전에서도 차두리는 90분 동안 모든 것을 그라운드에 쏟아부었다. 우루과이에 패해 8강이 좌절된 한국. 차두리는 그라운드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고 국민들 모두 함께 울었다.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고 차두리는 자신의 세 번째 월드컵, 자신의 마지막이 될 월드컵을 기다렸다. 하지만 차두리의 기다림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엔트리 23인 중 차두리의 이름은 없었다.
차두리의 나이는 한국나이로 35세다. 다음 월드컵을 기다릴 수 없는 나이다. 따라서 차두리의 월드컵은 끝났다. 2002, 2010 월드컵, 두 번의 월드컵이 차두리 축구 인생에 남은 월드컵이 됐다. 두 번의 월드컵에서 차두리가 그라운드를 밟았던 ‘405분‘. 이 시간이 차두리 월드컵의 전부가 됐다.
차두리도 물론 아쉬움이 있었다. 차두리는 "월드컵은 누구나 나가고 싶은 대회다. 나 역시 몸상태가 좋아 한편으로는 기대를 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좋은 후배들이 좋은 경기 해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월드컵을 두 번 나가봤고, 좋은 성적도 거둬봤다. 내가 못 가는 것보다 한 번도 나가지 못한 후배들이 탈락한 것이 더 아쉽다"며 월드컵에 다시 나서지 못하는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미련은 없었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3월 차두리는 그리스와의 평가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허벅지 부상으로 낙마했다. 당시 그리스전에 합류해 활약을 했다면 차두리의 월드컵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차두리는 무리하게 대표팀에 합류하지 않았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합류해 월드컵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차두리에게는 대표팀보다 현 소속팀 FC서울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대표팀에 갔다면 더 큰 부상을 당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FC서울에서는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오랫동안 쉬어야 한다. 차두리에게 월드컵도 중요하지만 지금 몸담고 있는 FC서울도 더없이 소중했던 것이다.
차두리는 "당시 몸상태로 억지로 (대표팀에서) 뛰었다면 돌아와서 더 긴 휴식기를 가졌어야 했다. 분명한 것은 내가 (독일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 월드컵을 위해서가 아니다. FC서울을 위해서였다. 서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활약하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서울을 이용해서, 발판으로 삼아서 월드컵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며 서울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 차두리는 "그 때(그리스전) 당시에도 대표팀에 합류했다면 돌아와 소속팀에서 경기를 뛸 수 없었다. 서울은 많은 경기가 남아있었고 서울에서 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 때 대표팀에 가지 않아 지금 서울에서 많은 경기를 뛸 수 있다. 내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아쉬움, 후회는 없다. 항상 믿고 도와준 팀 동료들과 감독님에게 고맙다"며 자신의 선택을 믿었다.
대표팀에 뽑힐 마지막 기회를 놓친 차두리에게 마지막 월드컵은 없었다. 하지만 후회도 미련도 없다. 한 번도 나가보기 힘들다는 월드컵을 2번이나 출전했다. 또 최고의 성과도 올렸다. 한국이 월드컵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낸 두 번이 다 차두리의 월드컵에 포함돼 있다. 국민들의 뜨거운 사랑도 받았고, 자신의 가치도 인정받았다. 후회 없는 월드컵이었다. 그렇기에 차두리는 미련 없이 월드컵과 이별할 수 있었다.
차두리는 "나의 월드컵은 끝났다. 월드컵에 나가서 한 번도 예선탈락을 해본 적 없다. 내가 항상 자랑스럽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월드컵, 좋은 경험이었다. 축구의 시작이 월드컵이었다.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자신의 월드컵 ‘405분‘을 정리했다.
그리고 차두리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두 번의 월드컵을 돌아보며, 월드컵과 이별하며 남긴 마지막 한 마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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