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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보란 듯이 뛸 때, 말없이 뛰기만 하는 기성용

2018-06-09 출처: 뉴스1



오스트리아 레오강에 꾸려진 축구대표팀의 러시아 월드컵 사전캠프를 지켜보면 확실히 평소 때와는 다른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선수들 모두 하고자 하는 의욕이 넘쳐난다. 당연하고 또 그래야하는 때다.

월드컵 개막이 그야말로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니 누가 어떤 것을 지시하지 않더라도 개개인이 높은 집중력으로 가진 모든 것을 짜내고 있다.

팀으로서 똘똘 뭉쳐야할 때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내부 경쟁으로 치열할 시기다. 선수들은 코칭스태프의 확실한 눈도장을 위해 숨이 끊어질 듯 힘들어도 마지막 체력을 짜내고 자신만의 장기를 보여주기 위해 평소보다 강한 의욕으로 나선다. 목소리도 커지고 동작도 커진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처럼 ‘보란 듯이‘ 뛰는 것과 달리 평소보다 더 묵묵하게 땀을 흘리는 이가 있으니 대표팀 캡틴 기성용이다.

훈련 전후 미팅 때 완장을 찬 선수단 리더로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훈련장에서 기성용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고참급 선수들이 높은 톤으로 후배들을 독려하고, 후배들은 그에 보조를 맞춰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훈련장 공기를 쩌렁쩌렁하게 만드는 것과 달리 기성용은 그냥 뛴다.

평소보다 더 말이 없다. 오스트리아 레오강에 훈련 캠프를 차린 뒤로는 침묵의 강도가 세졌고 얼굴의 웃음기도 사라졌다. 컨디션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으로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두리 코치는 기성용의 표정이 많이 어둡다는 말에 잠시잠깐 생각한 뒤 "괜히 무게 잡는 거다. 주장은 그런 맛이 또 있어야한다. 모두가 깔깔 거리고 웃을 수는 없으니 성용이가 분위기 잡으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특유의 유쾌함으로 스리슬쩍 넘어가려 했으나 캡틴이 그만큼 부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축구대표팀의 관계자 역시 "당연히 성용이가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훈련이나 생활에 임하고 있다"면서 "원래 책임감이 강한 선수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더 특별해 보인다"고 귀띔했다.



캡틴 기성용이 짊어지고 있는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특별한 에피소드가 이곳 레오강에서 벌써 두 차례나 나왔다.

레오강 첫 훈련이던 4일 오후(이하 한국시간). 모든 선수들이 장시간 이동에 따른 여독을 풀기 위해 족구 등 훈련에 놀이가 가미된 프로그램으로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그러나 기성용은 무리에서 벗어나 지원 스태프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임현택 의무팀장과 수시로 대화하면서 발목과 무릎 강화 훈련을 진행했다.

기성용은 이날 공식 훈련이 모두 끝나고 코칭스태프가 먼저 훈련장에서 빠져나간 뒤 선수들 중앙에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 시간이 대략 20분 가까이 됐다. 주장이 훈련을 마무리하면서 필요한 것을 말하는 것은 낯선 장면이 아니지만 이 정도 장시간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었다.

7일 오후 인스브루크에서 펼쳐진 볼리비아와의 평가전(0-0) 후에도 기성용의 현재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다소 아쉬운 결과와 내용이 나온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던 기성용은 "최종예선부터 지금껏 팬들에게 똑같은 말을 해왔다. ‘기대해 달라‘ ‘최선을 다하겠다‘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내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 많이 힘들다"라는 제법 놀라운 속내를 공개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발언이었다. 그만큼 쉽지 않은 도전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고,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는 각오이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기성용의 월드컵은 다른 22명의 월드컵보다 더 무거워 보인다는 사실이다.

선수로서만 4번, 코치와 감독으로 각각 1번씩 총 6번의 월드컵을 경험한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모든 선수들의 무게가 다 같을 수 없다. 기성용의 월드컵과 손흥민의 월드컵과 이승우의 월드컵은 무게가 다르다"는 말로 그의 심정을 헤아렸다.

신태용 감독과는 또 다른 책임감이 짓누르고 있는 모양새다. 기성용은 스웨덴이나 멕시코나 독일과 겨루기 전 이미 자기 자신과 쉽지 않은 싸움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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