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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월드컵 16강 진출 가능성 25%"

2018-05-29 출처: 시사저널

월드컵 4강 신화 주역 이영표 KBS 해설위원 "그러나 기대 성적은 100%"

2018 러시아월드컵의 새로운 볼거리 중 하나가 안정환(MBC)·이영표(KBS)·박지성(SBS) 해설위원의 입담 경쟁이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이 펼치는 중계석의 ‘장외 전쟁’은 월드컵을 보는 축구 팬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월드컵 관련 광고주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영표 KBS 해설위원이 가장 선호하는 해설자 1위로 뽑혔다. 박지성이 가세했지만 ‘그래도’ 해설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이영표라는 의미였다.

한국 축구에서 이영표란 이름이 갖는 무게는 박지성과는 또 다른 형태다. 철두철미한 자기관리와 노력으로 ‘선수 이영표’를 완성시킨 성실함의 대명사였다. 은퇴 후에는 경기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깊은 안목을 통해 대표팀을 향해 따뜻한 조언과 날카로운 지적을 보낸 ‘축구인 이영표’로 변화를 이뤘다. 월드컵을 앞두고 다양한 행사와 해설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영표를 만났다.



월드컵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열기가 이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많다.

“지금은 그럴지 몰라도 앞으로 국내에서 열리는 두 차례의 평가전(5월28일 온두라스전, 6월1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전)을 치르고 나면 분위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를 좋아하기보다는 이기는 것 자체를 더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스포츠는 이기려고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스포츠는 이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승리에만 집착하면 스포츠가 우리에게 전하는 진정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스포츠를 통해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제한된다는 게 아쉽다.”

이영표의 얘기를 듣던 중 그가 여전히 날렵한 몸매와 선수 시절의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은퇴 후 축구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선수 시절의 마지막 클럽이었던 캐나다 밴쿠버 화이트삭스 앰버서더로 활동하면서 밴쿠버의 대학생들과 종종 축구로 친선을 도모한다고 말했다.

신태용 감독이 28명의 월드컵 출전 예비 명단을 발표했다.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들 중 부상자가 나오면서 안타까움을 샀다.

“수비에서 레프트백 김진수, 센터백 김민재가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신태용 감독이 그 공백을 메우려고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4-4-2 포메이션에서 김진수·김민재의 전력 이탈은 수비 라인의 50% 전력이 빠져나간 거나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신 감독은 28인 엔트리를 스리백을 염두에 두고 명단을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12명의 수비수들 중 윙백을 볼 수 있는 선수가 6명이나 된다. 특히 공격과 수비가 동시에 가능한 고요한·박주호·김민우 그리고 최근 윙백 경험이 있는 이청용까지 특별히 공격적인 윙백들을 많이 뽑았다.”

염기훈이 부상으로 제외된 부분이 대표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나(인터뷰를 할 당시만 해도 권창훈·이근호의 부상이 있기 전이었다).

“염기훈은 신 감독이 조커로 쓰려 했던 선수였다. 염기훈의 공백으로 조커가 부족해 보이는데, 그 자리는 이승우나 문선민이 대신해 줄 것 같다. 이승우의 발탁은 대표팀에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할지도 모른다. 대표팀의 미래가 다소 답답해 보이는 상황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의 합류는 분명 신선한 기운을 전할 수 있다고 본다. 어찌 됐든 신 감독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23명의 월드컵 출전 선수들 명단을 확정할 것이다.”

소속팀(크리스탈 팰리스)에서 간헐적으로 출전 기회를 잡았던 이청용이 대표팀에 뽑힌 걸 두고 찬반양론이 뜨거웠다. 신 감독은 원래 소속팀에서의 활약 여부를 선발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는데 말이다.

“말 그대로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감독이 소속팀에서 뛰는 선수를 뽑겠다고 말했다면 당시 그런 말이 필요했기 때문에 했을 것이다. 그때는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경기력 저하가 우려됐다. 신 감독은 팀을 옮겨서라도 경기력을 유지하라는 강력한 사인을 준 것이다. 그런데 월드컵을 앞두고 염기훈이 부상을 당했다. 감독으로선 이청용의 경험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독이 어떤 말을 했다고 해서 그 말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다. 감독은 상황이 변하면 얼마든지 말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은 정직의 문제가 아니라 전술의 문제이고 감독이 언론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감독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흘릴 때도 있다. 팀이 안 좋아도 좋다고 말하고, 좋아도 안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왜? 그건 작전이기 때문이다. 신 감독이 소속팀에서의 경기력을 중요한 잣대로 삼겠다고 말했다면 그렇지 못한 선수에게 적극적으로 훈련에 참가하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경기에 뛰라는 사인을 보낸 것이다. 이청용이 23명 최종 명단에 들어갈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신 감독은 국내 평가전을 통해 이청용이 갖고 있는 경험이나 실력을 테스트하고 싶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선수 시절 감독이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린다고 느낀 적이 있었나.

“히딩크 감독이 종종 그런 방법을 사용했다. 미디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보를 주면 상대팀도 체크하기 때문에 일부러 거짓 정보를 알리는 것이다. 감독의 인터뷰가 기자들과,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선수들을 간접적으로 자극하거나 팀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추스를 때 미디어를 ‘이용’한다. 그럴 줄 아는 감독이 진짜 감독이다. 리더십이 뛰어난 감독일수록 언론을 이용할 줄 안다.”

이영표는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자신이 경험한 사례를 들려줬다. 히딩크 감독이 언론 인터뷰에서 A라는 선수를 향해 “멋 내려고 대표팀에 들어왔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실제 그 선수는 다음 소집 때 발탁되지 않았고 이후 소집에서 발탁됐다. 이영표는 히딩크 감독의 그런 제스처를 ‘반복적인 밀당’이라고 설명했다. 자신도 훈련에서 제외된 적이 있었는데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걸 눈치 챈 히딩크 감독의 무언의 사인이었다고 한다. 히딩크 감독은 사인을 보낸 후 선수의 반응을 살폈다. 반항하는지, 순종하는지를. 이영표의 선택은 순종이었다.



간혹 선수들 중에는 소속팀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다가도 대표팀에선 유독 부진한 모습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좋은 선수라면 소속팀에서 잘하고 대표팀에서도 잘해야 한다. 소속팀에서 잘하는 선수가 대표팀에서 실력 발휘를 못하는 건 심리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결국은 자신이 갖고 있는 실력으로 귀결된다. 심리적, 정신적, 체력적 요인도 모두 실력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내가 실력이 뛰어난데 감독이 날 안 뽑는다? 그건 실력이 없다는 얘기다. 내가 기술이 좋은데 체력이 떨어진다? 실력이 없다는 의미다. 내가 축구를 잘하는데 멘털이 약하다? 그것도 실력이 없다는 말이다. 프로 선수라면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신태용 감독이 끝내 이동국을 발탁하지 않았다. K리그에서 ‘불혹의 나이’를 앞둔 선수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미 넘치는 패스와 공간 창출 능력을 보이는 그가 대표팀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동국은 K리그 역사에 기록될 만한 선수다. 그러나 축구 실력은 사람들 관점에 따라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10가지의 기술 중 6가지를 가진 선수와 4가지를 가진 선수가 있다고 하자. 감독은 6가지보다 4가지의 특징이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면 그를 뽑을 수밖에 없다.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축구 색깔에 맞는 선수를 뽑을 권한이 있다. 그건 인정해 줘야 한다. 우리와 같은 조에 있는 스웨덴은 월드컵 최종 명단을 발표하면서 ‘슈퍼스타’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뽑지 않았다. 선수는 월드컵에 참가하고 싶어 했지만 얀 안데르센 감독이 외면한 것이다. 이유는 하나다. 얀 안데르센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에 즐라탄의 색깔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이동국 얘기로 돌아와서 이동국이 아닌 다른 선수라면 지금의 실력과 성적으로 대표팀에 발탁되고도 남는다. 그런데 이동국이라면 대표팀에서 최소 교체 멤버라도 뛰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감독 입장에선 이동국을 뽑아 놓고 출전 기회를 약속하기 어렵다면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동국은 상관없다고 하겠지만 감독은 이동국이기 때문에 벤치에 앉혀두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되는 상황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16강 진출이 암울한 상태다. ‘죽음의 조’로 불릴 만큼 독일·멕시코·스웨덴이 너무 막강하다. 그래도 대표팀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지 알고 싶다.

“4팀 중 1·2위 팀만 16강에 오르기 때문에 수학적으로는 50%의 확률을 갖고 있지만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독일이 90%, 스웨덴이 45%, 멕시코가 40%, 우리가 25% 정도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예상 성적이 아닌 기대 성적은 100%다. 마음만은 우리가 100% 16강 진출에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신태용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스웨덴과의 첫 경기를 가장 중요한 경기로 꼽았다. 동의하나.

“당연하다. 스웨덴전을 치르면 멕시코·독일과의 경기가 기다리고 있다. FIFA 랭킹 1위 독일을 이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스웨덴도, 우리도 첫 경기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스웨덴전이 월드컵 승운의 50%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 팀 다 ‘올인’할 수밖에 없다. 누가 마지막까지 ‘칼’을 숨기고 기다려줄 수 있느냐를 봐야 한다. 스웨덴전은 인내심과의 싸움이다.”

인내심과의 싸움이라고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스웨덴은 유럽 예선에서 단단한 조직력을 선보이며 러시아월드컵 우승후보로 꼽히는 프랑스를 2대1로 꺾고 조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1승1무를 기록하며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는데, 스웨덴이 조별예선과 플레이오프를 통해 치른 12경기에서 27골을 넣고 실점은 9골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수비가 탄탄하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어떤 강팀도 스웨덴의 두터운 수비벽을 허물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먼저 칼을 보였다가 당했다. 스웨덴이 4-4-2 포메이션의 수비 조직을 스스로 허물고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그 벽을 허물려고 덤비다간 되레 당할 수 있다. 그들이 깨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후반 막판에 분명 기회가 생긴다. 끝까지 칼을 숨기면서 기회를 기다리는 팀이 승리를 가져갈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손흥민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선수 스스로 부담을 안고 월드컵에 나갈 텐데 선배로서 조언을 한다면 어떤 얘기를 해 주고 싶나.

“내가 뛰었던, 그리고 지금은 손흥민이 활약 중인 토트넘 홋스퍼 FC는 프리미어리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클럽 중 15위 안에 들 정도로 명문팀이다. 그런 팀에서 2시즌 동안 톱클래스 공격수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실력만큼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토트넘의 손흥민과 대한민국의 손흥민은 차이가 있다. 토트넘은 어느 팀을 만나도 약팀을 상대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상대팀이 모두 우리보다 강팀이다. 토트넘에서처럼 플레이하기보다는 약팀에 속한 한 명으로 경기해 주길 바란다. 기술적인 건 내가 말할 게 없다. 이미 최고의 선수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에 임하는 마음 자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때와 달라야 한다. 토트넘의 손흥민이 아닌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손흥민이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이미 브라질월드컵에서 처참하게 패한 경험을 안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선수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

안정환·이영표·박지성 등 한국 축구의 스타플레이어 출신들이 각기 다른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월드컵에 참여한다. 3인방의 해설 경쟁을 냉정하게 분석해 달라.

“아마 골라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워낙 색깔이 분명한 세 사람이라 팬들은 선호하는 스타일에 따라 중계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새롭게 들어오는 박지성의 해설은 나도 기대가 된다. 지성이가 사석에서는 말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타입이라 해설에서 그 재미를 이어간다면 흥행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이크를 잡고 말로 축구를 풀어내는 건 결국 자기 색깔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영표는 마지막으로 월드컵 무대에 오르는 후배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선배의 진심이 뚝뚝 묻어났다.

“최선을 다한 이후의 결과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또한 선수 시절에는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무척 고통스러웠다. 세월이 지나 그 상황을 떠올려보면 내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그토록 무거운 죄책감을 가졌는지 잘 모르겠더라. 패했을 때는 팬들의 비난도 달게 받자. 단 그 비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잘했다고 칭찬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칭찬이 때로는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고 침착하게 상대와 싸워 나간다면 25% 이상의 기적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대한민국,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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