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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강한 이근호, 골 없어도 월드컵 유력멤버인 이유

2018-02-23 출처: 오마이뉴스

[주장] 다양한 포지션 소화하며 활동량도 많아... 이런 선수야말로 월드컵 대표로 필요

‘소리 없이 강한 남자‘ 이근호(강원)는 감독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선수로 꼽힌다.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한 플레이스타일과 다양한 포지션 소화능력, 건실한 내구성, 이타적인 성향까지 두루 갖춰 어디에 내놔도 자기 몫은 충분히 해내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근호는 지난 시즌 강원에서 총 37경기에 출장하여 8골 9도움으로 맹활약했다. 강원 선수중 최다 공격포인트이자 내용 면에서도 팀내 MVP로 손색이 없는 활약이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 복귀하여 동아시안컵과 터키 전훈 명단까지 빠짐없이 소집되는 주축 멤버로 인정받고 있다.

다가오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최종엔트리에 승선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어느덧 A매치만 84경기나 소화한 이근호는 30대 이상의 선수가 많지않은 신태용호에서 몇 안 되는 베테랑이자 월드컵 유경험자이기도 하다.

최근 다시 활약 두드러지는 이근호

 

 

사실 대표팀에서 이근호의 이미지는 ‘명품 조연‘에 가깝다. 2007년 첫 태극마크를 단 이래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근호가 정작 대표팀의 주연이었던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근호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3골을 터트리며 본선행을 이끌었지만 정작 최종엔트리에서는 탈락하는 고배를 맛봤다.

2014 브라질월드컵도 순탄하지 않았다. 최강희 감독이 이끌던 지역예선까지는 주전으로 중용되었지만 홍명보 감독이 부임하면서 노골적인 ‘유럽파 우대 정책‘에 따라 벤치멤버로 밀려났다. 월드컵을 앞두고 그해 1월 전지훈련에서는 "국내파와 유럽파간의 실력 차이는 없다"고 발언했다가 평가전에서 대표팀의 부진과 맞물려 유럽파 우월론을 주장하는 팬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한 끝에 남아공의 아픔을 만회하고 결국 재수만에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했다. 부동의 주전이었던 박주영의 뒤를 받치는 2순위 공격수가 이근호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이근호는 브라질월드컵에서 화려한 반전에 성공했다.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모두 교체로 출전했음에도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 내 공격수 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당시 군팀 상주 상무 소속 ‘육군병장‘이었던 이근호의 월급은 14만9000원에 불과했는데 첫 경기 러시아전 선제골로 이근호는 ‘그해 월드컵에 득점을 기록한 선수 중 가장 낮은 몸값을 기록한 선수‘라는 이색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정작 유럽파라는 화려한 타이틀과 과거 이름값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월드컵에서 ‘최악의 플레이‘로 지탄을 받았던 박주영의 부진과도 대비되어 이근호의 투혼과 축구센스는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조별리그 탈락으로 뭇매를 맞은 대표팀에서 이근호는 손흥민-김승규 등과 그나마 욕을 안 먹은 몇 안 되는 선수이기도 했다.

이근호는 2015년 호주 아시안컵 이후 한동안 대표팀에서 멀어졌다. 나이도 어느덧 30대를 넘기면서 이제 대표팀과는 더 이상 인연이 없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왔다. 그런데 작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오랜만에 대표팀의 부름을 받으며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한국은 에이스 손흥민이 전반에 팔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위기를 맞이했는데 이때 대체로 투입된 선수가 바로 이근호였다. 비록 한국은 이날 카타르에 2-3으로 패했고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되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이 경기에서 단연 이근호의 활약은 단연 두드러졌다. 이근호는 왕성한 활동량과 헌신적인 플레이로 팀에 기여하면서 카타르전만 놓고보면 오히려 손흥민이 뛰던 때보다 더 낫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근호는 신태용호에서도 소리 없이 녹아들었다. 지난 11월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근호는 신태용호가 꺼내는 4-4-2 전술에서 손흥민과 함께 투톱의 최전방 공격수로 나란히 출전했다. 이날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대표팀에서의 오랜 침묵을 깨고 두 골을 넣으며 맹활약한 손흥민이었다. 하지만 손흥민이 살아날 수 있었던 데는 파트너 이근호의 보이지 않는 헌신과 희생이 있었다.

이근호가 왕성한 활동량과 수비가담- 연계플레이로 상대의 집중견제를 분산시키면서 손흥민이 부담 없이 골사냥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출범 초기 부진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신태용호는 이날 콜롬비아전 승리를 바탕으로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고 4-4-2가 주 전술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이근호는 동아시안컵과 터키 전훈까지 꾸준히 발탁되며 신태용호의 핵심 멤버로 자리잡았다.

이근호가 대표팀에 필요한 이유

대표팀의 주포로 자리잡은 손흥민과 김신욱에 비하여 이근호는 신태용호에서는 아직까지 득점이 없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인정받는 정상급 공격수로 올라선 손흥민과, 최근 A매치 6경기에서 7골을 터뜨리며 폭발한 김신욱에 비하여, ‘골도 없는 이근호가 왜 월드컵 유력멤버인가‘ 의아해하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대표팀의 경기력을 본 이들은 이근호가 득점이 없어도 전술적으로 팀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는 선수인지를 알고 있다.

 

 

이근호는 2선 공격수가 주포지션이지만 상황에 따라 최전방까지 소화하는 경우도 많으며 본인이 욕심을 부리기보다 동료와 팀을 살리는 플레이에 능하다. 요즘 대표팀에서 자신이 돋보이기 위하여 애쓰는 선수들에 비하여 이근호는 헌신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명이다.

기술적으로는 투박해 보이지만 저돌적이고 부지런한 플레이,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과 미칠듯한 활동량에서, 이근호야말로 어쩌면 가장 ‘클래식한 한국축구 스타일‘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마지막 선수인지도 모른다. 특히 질 때 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뛰는 정신력은 오늘날의 팬들이 대표선수들에게 가장 요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근호에게는 ‘만인의 차순위‘라는 수식어도 있다. 허정무 감독에서부터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 슈틸리케, 신태용 감독에 이르기까지 스타일이 각기 다른 수많은 대표팀 감독들을 거쳐가는 상황에서도, 이근호는 비록 부동의 주전은 아닐지언정 항상 주전들의 부상이나 교체가 필요할 때마다 가장 우선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멤버였다. ‘어떤 감독이든 누구나 가슴 속에 이근호 한명 정도는 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이근호와 또래 세대이거나 그보다 앞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 하나둘씩 세월의 흐름에 밀려 사라지는 와중에서도 이근호는 여전히 클럽과 대표팀의 주력 선수 중 한명으로 장수하고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근호의 끈끈한 축구인생이다. 이근호 같은 선수가 아직 대표팀에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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