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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위대한 캡틴'은 어디로 가고 변명하는 자만 남았나

2018-07-07 출처: 오마이뉴스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선수로서 월드컵 본선무대만 무려 4번이나 출전했고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4강신화에 기여하여 브론즈볼을 수상했다. 코치(2006)와 감독(2014)으로서도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황금세대를 이끌고 한국축구 사상 첫 동메달이라는 수확을 안기기도 했다. 팬들은 한국축구가 배출한 이 위대한 수비수를 향하여 ‘영원한 캡틴‘,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라는 찬사를 보내며 예우했다.

하지만 2018년 현재 홍명보라는 인물이 아직도 한국축구 팬들에게 자랑스럽고 존경받는 캡틴의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홍명보는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으나 1무 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데 이어 ‘의리축구‘ 등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서며 화려했던 축구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 슈퍼리그 항저우 뤼청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2년 만에 팀의 2부 강등을 막지 못하고 구단과의 갈등까지 겹쳐 불명예 사임했다. 지난해에는 축구협회 전무이사로 임명되어 행정가로 깜짝 복귀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 1승 2패로 16강진출에 실패했다. 독일전 승리 등 나름의 성과도 있었지만 지난 4년간 대표팀의 성적부진과 혼란스러운 팀운영, 각종 축구계 비리 사건 등을 둘러싸고 축구협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진 게 사실이다. 협회 수장인 정몽규 회장을 비롯하여 핵심 ‘실무자‘인 홍명보 전무 역시 사실상 ‘축협의 간판‘으로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난 5일 언론 간담회에서는 축구협회 수뇌부가 대거 참석하여 러시아월드컵에 대한 진단과 감독 선임 문제 등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여기에서 홍명보 전무는 석연치않은 발언으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가장 논란이 되었던 대목은 바로 이영표, 안정환, 박지성 등 2002년 월드컵 주역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홍명보 전무는 "2002년 월드컵의 성공은 이전 세대에 증명하지 못했던 선배들의 힘이 모여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며 "지금 해설위원들은 젊은 나이에 처음 나간 월드컵에서 성공하고 그 이후에도 성공을 경험한 세대다. 세대 간의 생각이 다르다"라고 평가했다. 최근 방송해설을 통하여 축구협회와 한국축구의 현 주소에 대하여 ‘쓴소리‘를 남긴 세 후배 축구인들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한 홍명보는 "현장의 어려움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장의 꽃은 지도자다. 현재 해설위원들이 만일 현장을 경험해봤다면 조금 더 깊은 해설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후배들의 지도자 데뷔를 권유하기도 했다. 안정환-박지성-이영표는 은퇴 후 방송활동이나 행정가 공부를 해왔지만 지도자 경험은 아직 없다.

홍명보의 경솔한 발언은 곧바로 팬들의 어마어마한 후폭풍에 직면했다. 다수의 팬들은 홍명보의 발언이 지극히 권위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힌 주장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해설위원들은 사적으로는 홍명보 전무보다 후배일지 몰라도, 이들의 쓴소리는 어디까지나 ‘해설가‘이자 ‘축구인‘이라는 공적인 위치에서 내놓은 의견이었다. 여기에 비판여론에 대한 합리적인 반박대신 뜬금없이 2002년의 추억을 꺼내들며 세대차이를 운운하는 것은, 선배의 권위를 내세워 후배들의 경험과 생각을 깎아내리려는 ‘권위주의적 발상‘으로 문제의 본질에서도 벗어난 동문서답에 가까웠다.

"지도자 경험이 없어서 현장의 어려움을 모를 것"이라는 식의 편견도 지극히 오만한 발상이다. 방송해설도 엄연히 전문적인 분야이고 축구산업의 중요한 한 축이다. 때로는 외부의 시선에 보는 시각이 더 객관적일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영표나 안정환, 박지성 같이 평생 축구인으로 살아온 이들의 의견조차 ‘한참 후배이고 지도자 경험도 없는데 뭘 아느냐‘고 무시하는 게 홍명보 전무의 평소 생각이었다면, 그동안 수많은 축구팬들이나 언론의 비판에 대해서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홍명보의 발언은 축구인 개인으로서는 물론이고 축구협회 간부로서도 절대 해서는 안될 망언에 가깝다.

사실 홍명보가 경솔한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2013년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당시 "소속팀에서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는 선수를 중용하겠다‘는 원칙을 내세웠지만 정작 1년 뒤 본선무대에서는 이 기준에 벗어나는 선수들을 대거 편애하며 ‘말바꾸기‘ 논란에 휘말렸다.

월드컵에서의 부진과 각종 구설수로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나던 당시에는 "K리그는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보다 아래인 B급"이라고 폄하하여 K리그팬들의 분노를 불러온 바 있다. 당시 홍명보는 일부 유럽파와 자신이 잘아는 선수들만 선호한다는 ‘의리축구‘ 논란에 대하여 "소속팀에서 경기에 못나가는 선수라도 유럽파가 낫고, K리거들의 실력은 그보다 아래에 있다"고 평가하며 자신의 선수선발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홍명보는 이후 행정가로 축구협회에 은근슬쩍 복귀한 이후에도 당시의 발언에 사과하거나 해명한 일이 없다.

축구팬들이 홍명보라는 인물에 대하여 실망하고 등을 돌리게 된 가장 결정적인 부분도 바로 이러한 권위적이고 ‘내로남불‘에 가까운 태도 때문이다. 홍명보는 ‘축협의 황태자‘라는 별명이 있을만큼 한국축구에서 ‘꽃길‘만을 걷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은퇴 후 당초 행정가를 표방했으나 축구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속에서 지도자 자격을 아직 완료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A대표팀 코치와 각종 연령대별 대표팀 감독을 두루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한국축구 역사상 이 정도의 특혜를 누린 인물은 홍명보 외에는 없다.

지난 브라질월드컵의 실패는 지도자이자 축구인으로서 홍명보의 숨겨진 민낯을 처음으로 만천하에 드러낸 장면이었다. 팬들이 진정 실망한 부분은 월드컵의 성적이 아니라 대표팀 감독으로서 보여준 무능하고 독선적인 태도였다. 파벌과 특혜 의혹으로 얼룩진 선수선발, 원칙없는 말바꾸기와 근거없는 허세, 실패 이후에도 책임 회피와 자기합리화로 일관하는 자세는 우리가 그동안 홍명보라는 인물에게 기대했던 ‘당당한 캡틴‘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지 3년 뒤 홍명보는 어느날 갑자기 행정가라는 새로운 직함을 얻어 축구협회 전무이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동안 국가대표팀과 중국리그에서 ‘지도자로 실패‘했다는 기록은 남아있지만, ‘행정가로서의 경험이나 역량‘은 어느 하나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시간이 흘렀다고 다시 ‘축구협회 개혁의 간판‘으로 화려하게 포장만 바뀌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지난 언론간담회를 통하여 드러난 홍명보 전무의 문제점은 여전히 변한 게 없다. ‘유소년 시스템을 바꿔야한다‘, ‘후배들이 현장 경험을 쌓아야한다‘고 한국축구의 문제점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듯 하지만, 정작 그 비판의 대상에 항상 ‘자기 자신‘은 제외되어 있었다.

홍명보 전무는 4년 전 감독으로서 실패했을 때도 자신의 잘못이나 문제점에 대한 진정어린 반성없이 도망치듯 떠났다. 행정가로 돌아온 지난 8개월간 신태용호의 흥망성쇠에 대해서도 실무자로서 당연히 공동의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있지만, 정작 홍전무가 내놓은 핑계라는 건 축구계의 구조적인 문제를 거론하며 "축구협회 안에서만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변명 뿐이었다.

차라리 홍명보가 안정환-이영표같은 해설자였거나 야인이었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축구협회 실무자로서 그런 변명은 자신의 역량부족을 인정하는 제얼굴에 침뱉기일 뿐이다. 대표팀 감독이든 전무이사든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하여 가장 ‘증명‘이 필요한 자리가 홍명보라는 검증되지 않은 인물의 ‘경험‘을 쌓는 자리로 변질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홍전무에 필요한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어설픈 충고를 하는 것보다, 본인 스스로부터 과연 지금 한국축구에서 개혁의 주체인지, 아니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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